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

1. 개요

히틀러는 단절된 동프로이센을 연결하는 회랑으로 단치히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서 폴란드를 전격 침공한 지 5주만에 폴란드의 항복을 받아 냈다. 그리고 1940년 5월 독일의 역사적 경쟁자인 프랑스를 침공해서 단숨에 파리를 점령해 버렸다. 이어서 영국 본토를 공습했지만 처칠의 지도력하에 영국의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마침내 러시아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인해 패색이 짙어진 독일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연합군에 항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체적 줄거리를 요약해 본다.

2.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1) 폴란드 침공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전격 흡수한 히틀러의 다음 먹이감은 폴란드였다. 히틀러는 베르사이유조약으로 상실한 독일 영토 중에서 폴란드가 관할 중인 단치히를 병합함으로써 단절된 동프로이센 지역을 독일과 연결하고자 했다. 단치히 거주 주민의 90%가 독일인들이었기 때문에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단치히를 요구했으나 폴란드가 이를 거부하자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하게 된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며칠 후 소련도 폴란드 동부 지역을 침공했다. 1939년 소련과 독일은 비밀리에 체결한 불가침 조약을 통해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를 해 놓은 상태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틀 후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폴란드는 독일 침공 1개월 후 독일에 항복해 버렸다.

2) 프랑스 점령

폴란드를 순식간에 점령한 독일은 1940년 4월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침공해 북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그 해 5월 베네룩스 삼국과 프랑스 침공에 돌입했다.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벨기에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 국경에 도착하는데 3주는 걸릴 것이라고 보았지만 파죽지세로 돌파한 독일군은 불과 3일 만에 국경 도시 스당에 도착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프랑스 군과 영국군을 몰아 부쳐 5월 말 40만 명 정도가 됭케르트에 고립되었다. 포위된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영국은 어선들까지 동원해서 약 34만 명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영국으로 탈출시켰다.

3) 영국 본토 공습

프랑스는 1940년 6월 결국 나치에 항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에 대항해 고독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던 영국을 침공했다. 그러나 프랑스 북부 항구에 50만 명의 군과 중화기를 집결한 독일은 우선 공중전에서 영국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독일의 런던 대공습으로 인해 버킹엄 궁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본토 공중전에서는 영국이 승리했다. 뛰어난 전파 탐지장치들과 레이더를 통해 효과적으로 독일 공군의 공습을 차단했다. 영국과의 공중전에서 패한 독일군은 영국 점령을 포기하고 군을 소련으로 옮겨 소련 침공에 나섰다.

3. 미국의 참전과 히틀러의 몰락

1) 스탈린그라드 전투

히틀러는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통해 소련 침략을 잠시 미뤄두었지만, 소련을 유대인과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했던 그로서는 반드시 소련을 점령해서 유럽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치는 공산주의자를 거악의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4개월이면 소련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개전 초기에는 공격이 성공하는 것 같았지만 소련의 혹독한 날씨에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독일군은 통신 두절과 보급의 문제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패배하고 소련에서 발을 빼게 된다. 나치의 소련 침공으로 인해 소련군 100만 명, 독일을 비롯한 주축국 80만 명, 그리고 시민들까지 포함하면 약 200만 명의 사람들이 숨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가 바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였다. 동부에서 승기를 잡은 소련 군은 이제 베를린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2) 노르망디 상륙작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와 처칠, 그리고 스탈린은 1943년 11월 테헤란에서 만나 제2차 독일 공격에 합의하였고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이 합의에 따라 1944년 6월6일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의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그 해 8월 25일 4년 이상이나 독일군이 점령했던 프랑스를 해방시켰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를 지원하고 싶었지만 미국 내 전쟁 참여에 대한 반대가 너무 심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즉흥적인 대미 선전포고로 인해 미국에게 참전의 명분이 주어졌고 결국의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히틀러의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과대망상증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4. 마무리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4,000만명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 약 7,000만~8,500만 명이 숨졌다. 소련의 경우 전체 인구의 13%, 약 1,887만 명이 숨졌다. 독일 또한 전체 인구의 11% 정도인 690만 명이 숨졌다.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고 국제 무대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자본의 25%가 파괴되었고, 독일이 13%, 이탈리아 8%, 프랑스 7%, 영국은 3%의 손실을 입었다. 반면 미국은 경제적으로 가장 큰 수혜자로 당시 경제 성장률이 10%를 넘을 정도였다. 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데는 미국 뿐만 아니라 인적, 물적 측면에서 가장 큰 손실을 입은 소련의 공이 컸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소련이 동부 전선에서 선전했기 때문에 히틀러를 격퇴할 수 있었다. 여하튼 히틀러의 가장 큰 패착은 소련 침공과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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