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 외교와 유럽의 동맹체제

개요

유럽 외교사에서 오토 폰 비스마르크만큼 천재적 외교수완을 발휘했던 인물은 없다. 비스마르크는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내적으로는 군사력을 증강하고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을 이루었다. 동시에 그는 대외적으로 타고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서 동맹을 통해 유럽의 세력균형을 만들어 내었고 19세기 유럽의 정치 지형을 주도해 나갔다. 비스마르크의 외교와 유럽의 동맹 체제를 보지 않고서는 19세기 유럽의 복잡한 세력 균형체제를 이해할 수가 없다. 비스마르크는 도대체 어떻게 그 정글과 같은 복잡한 외교지형을 돌파해 가면서 독일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갈 수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스마르크의 외교

독일 통일과 동맹 구축

비스마르크는 300여개의 영방국가들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우선 프로이센 중심으로 구성된 독일 연방의회를 설득해 ‘철혈정책’으로 불리는 군비증강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병력과 장비를 대폭증강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7주 전쟁’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제압하고 1871년 우선은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통일을 이룬다. 그리고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국력을 강화하고 독일의 최대의 적이었던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해 복잡한 동맹을 구축했다. 이념보다 실용성을 강조한 그의 현실 정치 접근법이 드러난다.

삼제 동맹의 결성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통일에 만족하며 팽창주의적인 대외정책으로 주변 강대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음을 알려서 주변국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1890년 총리에서 물러날때까지 비스마르크는 현상유지를 통해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데에 외교의 역점을 두었다. 이러한 목표하에 비스마르크는 우선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오스트리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발칸반도로 러시아가 진출하는 것을 막기위해 오스트리아도 독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러시아도 발칸반도에 대한 현상 유지에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에 1873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삼제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3국의 황제들은 군주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각자의 이해 관계가 있었고 삼제동맹은 군사적 동맹으로서의 성격보다는 프랑스를 고립시키고자 하는 외교적 목표가 더 뚜렷했다.

이중 동맹을 통한 독일의 입지 강화

비스마르크는 이탈리아와도 동맹을 체결했다. 식민지 쟁탈전에서 프랑스와 갈등이 있던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포함시켜 삼국동맹을 결성하였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삼국이 프랑스 이외의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우호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프랑스가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공격하면 조약 당사국들에 대한 원조의무가 발생하는 조약이었다. 삼국동맹은 노골적으로 프랑스를 겨냥한 동맹이었다.

재보장 조약

이에 더해 비스마르크는 1887년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을 통해 프랑스의 고립을 노렸다. 프랑스와 독일의 긴장이 고조되었기 때문에 이 조약은 제3국의 공격을 받으면 서로 중립을 지키는 것을 명문화했다.

 

비스마르크의 유산

외교의 모범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수완과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외교사의 모범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능숙한 동맹 외교는 실용주의와 힘의 역학 관계를 강조하는 현대 외교 전략의 선례가 되었다. 신생국이었던 통일 독일이 유럽 외교의 중심을 자리를 잡았고 1878년의 베를린 회의에서 보는 것처럼 ‘정직한 중재자’를 자처하며 복잡한 세력 쟁탈전의 중재자가 되었다. 비스마르크라는 거인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독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1890년 비스마르크의 실각으로 인해 동맹이 해체되고 빌헬름2세는 제국주의 정책을 밀고 나갔다. 해군력을 크게 증강하고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와의 갈등이 초래되었다. 이러한 팽창주의 정책 때문에 독일은 이제는 거꾸로 프랑스가 주도하는 반독일 동맹에 포위당하게 된다. 이는 비스마르크가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비스마르크의 실각으로 인한 외교적 실책은 결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삼국동맹을 결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삼국동맹은 독일, 오스트리아,이탈리아 동맹과 충돌,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만다.

결론

유럽 역사 가운데서 비스마르크의 외교를 통해 구축된 동맹 체제는 국가간의 세력 균형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비스마르크의 능수능란한 외교력과 전략적 동맹은 유럽 대륙의 세력균형을 재편했고 오늘날까지도 외교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비스마르크 같은 존재가 한 명 더 있었더라면, 온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 넣었던 1,2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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